# 확률적 사고
[[확률적 사고 mogui ops master]]
홍진채 | 2022년 8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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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실력을 가지고 초보니 고수니 나누는 걸 전혀 좋아하지 않지만, 명백하게 구분되는 레이어가 존재하고, 그 레이어의 관점에서 최근에 느낀 위화감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 끄적여본다.
초보자: 세상을 확률론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그런 관점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 대부분의 투자자가 여기에 속한다. 아무리 지식과 경험이 많이 쌓여도, 이들이 하고자 하는 건 홀짝 맞히기 게임일 뿐이다. 그런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같은 내용으로 대화하는 것 같으면서도 대화의 결이 영 이상하게 흐른다. "좋은 쪽으로 보자면 이럴 수도 있고, 나쁜 쪽으로 보자면 이럴 수도 있겠네요."와 "그래서 둘 중 어느 쪽인데요?"가 반복된다.
중요한 건 홀짝 맞히기가 아니라 비대칭적인 손익비다. 맞힐 확률까지 계산해낼 수 있으면 더할나위없이 좋겠지만, 그건 대충 반반으로 해두는 게 안전하다. 확률을 건드리는 건 가치평가에서 할인율을 건드리는 것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위험하다. 손익비의 중요성은 워런 버핏과 소로스가 공유하는 핵심 사고 체계다. 버핏의 절친 멍거도, 버핏의 스승 그레이엄도 그 사고를 공유한다. 중요한 건 홀짝을 맞히는 게 아니라, 맞혔을 때 버는 돈이 틀렸을 때 잃는 돈보다 큰 게임을 가능한 많이 찾아서 베팅을 분산시키는 일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초보자다. 이런 사람이 성과가 때때로 좋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일수록 그 성과를 온전한 자기 실력으로 착각하여 베팅금액을 더 늘리다가 망한다. 아주 운이 좋다면 그 좋은 성과가 상당히 오래 지속될 수도 있지만.
단일시행의 결과에 무작위성이 크게 작용하는 시스템에서 운과 실력이란 무엇인가. 운의 영역을 줄이는 게 실력이 아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착각하는데, 그건 가정에 모순된 대답이다. 확률분포를 계산하고 다수시행이 가능하게끔 베팅비율을 조절하는, 그 의사결정 과정을 갖추었느냐가 실력이다.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 이미 실력은 결정되어있다. 주사위의 결과값이 1이 나오든 6이 나오든 중요하지 않다.
중급자: 위 사항을 체계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직관적으로 뭔가 이 바닥은 '잘난척하면 안 된다', '언제나 틀릴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내가 잘하는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 등의 태도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사람들이다. 나름 자신만의 원칙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한다. 흔히 말하는 '투자 철학' 운운하는 단계가 이 지점이다.
어떤 원칙이 왜 작동하는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대충 통한다는 건 안다. 문제는 이 원칙을 지나치게 고수하느라 좋은 기회를 놓칠 수도 있고, 자기의 '철학'에만 빠져서 명백히 잘못된 의사결정임에도 불구하고 틀린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사람이 유연해야지'라며 새로운 원칙을 시도하다가 잘 된 경우 '고수'가 되었다는 착각에 빠지지만 그건 고수가 된 게 아니라 초보자와 중급자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과정일 뿐이다.
초보자 단계를 넘어서기가 상당히 어렵긴 하지만, 중급 단계에 들어서는 사람이 그렇게 적진 않다. 주변에서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절대 빈도로 따지자면 기관투자자보다 개인투자자 중에 오히려 이 영역에 접어든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기관투자자나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은 개인투자자보다 더 많은 정보를 득하고, 정보를 소화하고 가공하는 데에 쓰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에 오히려 세상을 확률적으로 바라보기가 어려운 걸까.
고급자: 확률적인 의사결정이 습관화되어있기 때문에, 웬만한 일에 당황하지 않는다. 몇 가지 단순한 원칙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 같아보이기 때문에 중급자와 구분하기 어렵고, 별로 아는 게 많아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중급자들처럼 정보를 함부로 쳐내지도 않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정보를 침소봉대하지도 않는다. 세상의 변화에 귀와 눈이 열려있으면서도 포지션 변경은 신중하다. 대단히 '철학' 같은 걸 주장하지도 않는다. 대단히 '남과 다르게' 움직이는 것에 신경쓰지도 않는다. 그저 본인이 좋다고 생각하는 걸 사고 나쁘다고 생각하는 걸 판다. 때때로 틀리고, 상당히 많이 틀리기도 하지만, 언제나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고, 지나고 나면 결국 승자가 되어있다.
그런 사람은 전 세계에 몇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 한들, 그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타인이 알기도 어렵다. 내가 아는 바로는 워런 버핏, 필립 피셔, 조지 소로스 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본질적인 질문을 끝까지 던지면서도 그 대답을 현실과 조화시킬 줄 아는 사람들.
문제는 이런 레이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인 데다, 이 레이어가 있다 한들 방금 이야기한 대로 두 번째 레이어에 도달한 사람도 희귀하며 세 번째 레이어에 도달한 사람은 전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매체에서 '고수'라고 등장하는 사람들이 이 빈 자리를 채워버린다. 이들의 실상은 단지 많은 경험과 지식이 쌓인 사람일 뿐이다. (그나마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도 나름의 경험과 지식이 쌓여가고, 스스로가 중수, 혹은 고수의 반열에 올랐다고 착각한다.
이 바닥은 전체의 일부에게 무작위적으로 좋은 성과를 안겨주는 곳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어느 정도 '레벨'이 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성과를 얻기도 한다.
전문 용어를 많이 알고 산업 공부를 열심히 하고 국제 정세와 매크로 이슈에 해박하다고 해서 상위 레이어로 올라갈 수는 없다. 예측력이 아주 약간 좋아질 수는 있지만, 예측 게임에 머무르는 한 그는 여전히 초보자다.
이들에게 확률분포, 기댓값, 할인율, 장기 기대수익률 같은 이야기는 교과서에서나 등장하는, 실전 경험이 부족한 어린 아이나 학계 종사자들이나 쓰는 용어라고 간주한다. 예전에 다 배워서 '안다'고 착각하는 건 더욱 가관.
뭐 어쨌거나 이 바닥은 말보다는 성과로 승부를 보는 곳이고. 결국 자기 관리 잘하는 놈이 살아남는 판이다. 아무리 주저리주저리 썰을 풀어봤자, 결국 성과가 저조하면 아웃이다. 다행히도, 이런 썰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돈벌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나나 잘하자.
ps. 그냥 끝내기 아쉬워서 책 한 권 추천. 다부치 나오야의 '확률적 사고의 힘'. 확률적 사고를 가장 쉽게 설명한 책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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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록: 확률적 사고를 둘러싼 지적 계보
## 1. 추천 도서 — 다부치 나오야, 확률적 사고의 힘
원제 「確率論的思考 — 金融市場のプロが教える最後に勝つための哲學」. 다부치 나오야(田渕直也)는 히토쓰바시대학 경제학부 졸업 후 일본 장기신용은행에서 파생상품 개발과 포트폴리오 운용을 거쳤고, 현재 밀레투스 파이낸셜 컨설팅 대표이자 시그마 인베스트먼트스쿨 학장으로 활동하는 금융 애널리스트다. 한국어판은 에프엔미디어에서 2022년 2월 출간(황선종 옮김).
책의 핵심 주장 세 가지:
**다양성의 확보** — 단일 시나리오에 올인하지 않고 다양한 대응 수단을 미리 갖춰두는 것. 홍진채 글의 "베팅을 분산시키는 일"과 정확히 겹친다.
**실패의 허용과 활용** — 결과론("결과가 전부다")은 확률적 사고의 최대 장벽이다. 실패했더라도 방식이 잘못된 것이 아닐 수 있고, 성공했더라도 운이 좋았을 뿐일 수 있다. 책은 유방과 항우의 사례로, 실패를 책망하지 않고 시행착오를 허용한 쪽이 결국 이긴다는 것을 보여준다.
**장기적 관점** — 큰 수의 법칙과 시간의 효과에 의해 진실은 서서히 명료해지고, 올바른 방식과 그렇지 않은 방식의 차이가 점점 벌어진다. 단기 결과는 실력보다 우연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지만, 장기적 성공은 우연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재밌는 사실: 이 책 한국어판의 추천사를 홍진채가 직접 썼다. 추천사 제목이 "확률적 사고를 가장 쉽게 설명한 책" — 이 글의 ps와 같은 문장이다.
## 2. Annie Duke, Thinking in Bets (2018)
이 글의 영어권 쌍둥이 같은 책. 전 포커 월드 챔피언이자 인지심리학 박사인 Annie Duke의 핵심 전제: 인생의 중요한 결정 대부분은 체스보다 포커를 닮았다.
핵심 개념:
**Resulting** — 결과의 질로 의사결정의 질을 판단하는 오류. 성과를 온전한 자기 실력으로 착각하는 초보자의 모습 그대로다. 좋은 결정도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고, 그 역도 성립한다. 판단해야 할 것은 결과가 아니라 프로세스다.
**확률로 프레이밍하기** — "나는 확실하다"보다 "나는 70% 확신한다"가 낫다. 100% 확신에서 벗어나 "모르겠다"를 편하게 말할 수 있어야 더 정교한 사고가 열린다.
**똑똑함의 함정** — 똑똑한 사람일수록 자기 믿음을 뒷받침하는 서사를 더 잘 구성하기 때문에 오히려 편향에 취약하다. 홍진채가 "기관투자자가 오히려 확률적으로 보기 어려운 걸까"라고 던진 질문과 맥이 닿는다.
## 3. 켈리 기준 — "베팅비율 조절"의 수학적 정식화
홍진채가 말한 "확률분포를 계산하고 다수시행이 가능하게끔 베팅비율을 조절하는 의사결정 과정"의 수학 버전이 1956년 벨 연구소 John Kelly Jr.의 켈리 기준이다.
f* = (bp - q) / b
- f*: 전체 자본 대비 최적 베팅 비율
- b: 이겼을 때 보상 배율
- p: 이길 확률, q = 1 - p
켈리 비율보다 크게 베팅하면 장기적으로 반드시 파산하고, 작게 베팅하면 안전하지만 최적 복리 성장에서 멀어진다. 버핏이 실제로 이 사고를 가치투자에 적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짜 통찰은 이것: 켈리 기준은 정확히 계산할 수 없다. p와 b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산을 시도하는 행위 자체가 사고를 바꾼다. 확률을 추정하게 되고, 불확실성을 수량화하게 되고, 포지션 사이징을 감이 아닌 의도적 결정으로 만들게 된다.
## 4. 포커 — 확률적 사고의 가장 순수한 경기장
체스와 바둑은 완전정보 게임이다. 양쪽 모두 보드 전체를 본다. 숨겨진 것이 없으니 이론상 모든 국면에 최선의 수가 존재하고, 결국 계산력의 싸움이다. 그래서 딥블루가 1997년 카스파로프를, 알파고가 2016년 이세돌을 이겼다.
포커는 불완전정보 게임이다. 상대의 패를 볼 수 없다. AI가 포커를 넘어선 건 체스로부터 20년이 더 지난 뒤였고(2017년 Libratus가 헤즈업 노리밋 홀덤에서, 2019년 Pluribus가 6인 테이블에서 프로들을 이겼다), 그마저도 게임 트리 탐색이 아니라 반사실적 후회 최소화(CFR) 계열의 완전히 다른 수학이 필요했다. 숨겨진 정보가 있으면 "탐색"이라는 접근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복에 20년이 더 걸렸다는 사실 자체가 두 게임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증거다.
더 결정적인 차이는 결과와 실력의 관계다. 체스는 이기면 잘 둔 것이고 지면 못 둔 것이다. 포커는 완벽한 플레이를 하고도 그 판을 잃는다(bad beat). 단일 핸드의 결과는 의사결정의 품질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 이미 실력은 결정되어있다"가 매 핸드마다 문자 그대로 실행되는 게임이 포커다.
포커의 기술 요소는 이 글의 개념들과 거의 1:1로 대응한다.
- 팟 오즈 / 임플라이드 오즈 = 비대칭 손익비. "맞혔을 때 버는 돈이 틀렸을 때 잃는 돈보다 큰 게임"을 찾는 일이 콜/폴드 판단 그 자체다.
- 뱅크롤 관리 = 베팅비율 조절 = 켈리 기준.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판돈 대비 베팅이 크면 분산에 파산당한다.
- 레인지 사고 = 확률분포로 생각하기. 고수는 상대 패를 하나로 특정하지 않고, 가능한 패의 분포 전체에 대해 기댓값을 계산한다. "그래서 둘 중 어느 쪽인데요?"를 묻는 초보자와 정확히 반대 방향.
- 롱런 = 다수시행. 프로들이 승률을 수만 핸드 단위로만 이야기하는 이유. 최고의 플레이어도 지는 달이 있다.
GTO(게임이론 최적) 전략과 익스플로잇(상대 편향 착취) 전략의 긴장도 흥미롭다. 착취 불가능한 균형을 지킬 것인가, 상대의 실수를 노리고 균형에서 이탈할 것인가 — 시장에서 패시브 인덱싱과 액티브 알파 추구의 관계와 구조가 같다.
도박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포커가 마인드 스포츠로 논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운은 단일 핸드를 지배하지만, 핸드 수가 쌓이면 실력이 전부가 된다. "운과 실력이 뒤섞인 시스템에서 실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이 글의 질문에 대해, 포커만큼 압축된 실험장은 없다.
## 5. 사유할 거리
**"운의 영역을 줄이는 게 실력이 아니다"** — 이 한 문장이 글 전체의 핵심이다. 대부분은 실력 = 예측 정확도라고 생각하지만, 홍진채가 말하는 실력은 예측이 틀려도 살아남는 구조를 설계하는 능력이다. 소프트웨어의 fault tolerance, 생물학의 항상성, 전략론의 옵셔널리티와 같은 뿌리다.
**기관투자자 역설** — 정보가 많을수록 확률적 사고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관찰. 정보량이 늘면 "이번엔 맞힐 수 있다"는 확신이 커지고, 확신이 커지면 홀짝 게임으로 회귀한다. 개발에서도 같다. 기술 스택에 해박할수록 "이 아키텍처가 정답"이라는 확신이 강해지고 대안 설계를 확률적으로 저울질하지 않게 된다.
**결과론의 유혹** — "결국 성과가 저조하면 아웃이다"라고 본인이 쓴 것이 아이러니다. 이 문장 자체가 결과론이기 때문. 하지만 동시에 현실이다. 확률적 사고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충분히 긴 시간이 필요한데, 시장은(그리고 회사는) 그 시간을 항상 허락하지 않는다. 켈리 기준의 수학적 최적도 무한 시행을 전제로 한다.
**포커와 인생** — 커리어 선택, 기술 학습, 사이드 프로젝트 우선순위, 팀 갈등 대응 전부에 적용된다. 단일 시행의 결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되, 기댓값이 양수인 시행을 반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원 노트의 메모 그대로 — 포커 실력과 마찬가지고, 인생 전반에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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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홍진채(라쿤자산운용), 2022.8.7 페이스북
참고: 다부치 나오야, 확률적 사고의 힘 (에프엔미디어, 2022) / Annie Duke, Thinking in Bets (Portfolio, 2018)
태그: #사유하기 #취미/포커 #커리어
#취미/글쓰기
## 1. 다부치 나오야, 확률적 사고의 힘
[[확률적 사고 원본]]
원제 「確率論的思考」. 저자는 히토쓰바시대 경제학부 출신으로 일본 장기신용은행에서 파생상품 개발·포트폴리오 운용을 거친 금융 애널리스트입니다. 책의 핵심 축은 세 가지 — 다양성의 확보(단일 시나리오 올인 금지), 실패의 허용과 활용(결과론이 확률적 사고의 최대 장벽), 장기적 관점(큰 수의 법칙으로 진실은 시간이 지나며 명료해진다). 홍진채 글의 “베팅 분산”과 “다수시행”이 그대로 겹칩니다. 그리고 재밌는 사실 하나 — 이 책 한국어판 추천사를 홍진채가 직접 썼고, 추천사 제목이 “확률적 사고를 가장 쉽게 설명한 책”입니다. 글의 ps와 같은 문장이죠.
## 2. Annie Duke, Thinking in Bets (2018)
이 글의 영어권 쌍둥이. 전 포커 월드 챔피언이자 인지심리학 박사가 쓴 책으로, 전제가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체스보다 포커를 닮았다”입니다. 핵심 개념은 resulting — 결과의 질로 의사결정의 질을 판단하는 오류. 좋은 결정도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고 그 역도 성립하니, 판단할 것은 결과가 아니라 프로세스라는 것. “확실하다” 대신 “70% 확신한다”로 말하기, 그리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자기 믿음을 합리화하는 서사를 잘 짜기 때문에 오히려 편향에 취약하다는 지적 — 홍진채의 기관투자자 역설과 맥이 닿습니다.
## 3. 켈리 기준
“베팅비율을 조절하는 의사결정 과정”의 수학적 정식화. 1956년 벨 연구소 John Kelly Jr.의 공식 f* = (bp − q) / b. 켈리 비율보다 크게 베팅하면 장기적으로 반드시 파산하고, 작게 하면 안전하지만 최적 복리 성장에서 멀어집니다. 진짜 통찰은 이 공식을 정확히 계산할 수 없다는 것(p와 b를 알 수 없으니까) — 그럼에도 계산을 시도하는 행위 자체가 포지션 사이징을 감이 아닌 의도적 결정으로 바꿉니다.
## 4. 포커 — 확률적 사고의 가장 순수한 경기장
체스와 바둑은 완전정보 게임입니다. 숨겨진 게 없으니 이론상 모든 국면에 정답이 있고, 결국 계산력 싸움 — 그래서 딥블루가 1997년 카스파로프를, 알파고가 2016년 이세돌을 이겼죠.
포커는 상대 패가 안 보입니다. AI가 포커를 넘어선 건 체스보다 20년 뒤였고(2017년 Libratus 헤즈업, 2019년 Pluribus 6인 테이블), 그마저도 트리 탐색이 아니라 CFR(반사실적 후회 최소화)이라는 완전히 다른 수학이 필요했습니다. 숨겨진 정보가 있으면 “탐색”이라는 접근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니까요. 20년이 더 걸렸다는 사실 자체가 게임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증거입니다.
더 결정적인 차이는 결과와 실력의 관계예요. 체스는 지면 못 둔 겁니다. 포커는 완벽하게 플레이하고도 그 판을 잃습니다(bad beat). 단일 핸드의 결과는 의사결정 품질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아요.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 이미 실력은 결정되어있다”가 매 핸드 문자 그대로 실행되는 게임이죠.
포커의 기술 요소가 이 글의 개념과 거의 1:1로 대응합니다. 팟 오즈/임플라이드 오즈 계산이 곧 비대칭 손익비고, 뱅크롤 관리가 곧 켈리 기준이고, 상대 패를 하나로 특정하지 않고 레인지(분포)로 놓고 기댓값을 계산하는 게 곧 확률분포 사고입니다 — “그래서 둘 중 어느 쪽인데요?“의 정확히 반대 방향. 프로들이 승률을 수만 핸드 단위로만 말하는 것도 다수시행 그 자체고요. GTO 대 익스플로잇의 긴장도 패시브 인덱싱 대 액티브 알파와 구조가 같습니다.
도박 이미지와 달리 포커가 마인드 스포츠로 논의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운은 단일 핸드를 지배하지만, 핸드가 쌓이면 실력이 전부가 됩니다.
## 5. 사유할 거리
“운의 영역을 줄이는 게 실력이 아니다” — 이 한 문장이 글의 핵심입니다. 실력 = 예측 정확도가 아니라, 예측이 틀려도 살아남는 구조를 설계하는 능력. 소프트웨어의 fault tolerance, 전략론의 옵셔널리티와 같은 뿌리죠.
기관투자자 역설은 개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스택에 해박할수록 “이 아키텍처가 정답”이라는 확신이 강해지고, 대안 설계를 확률적으로 저울질하지 않게 되니까요.
그리고 결과론의 아이러니 — “성과가 저조하면 아웃이다”라고 본인이 쓴 게 재밌습니다. 이 문장 자체가 결과론이거든요. 확률적 사고가 옳음을 증명하려면 충분히 긴 시간이 필요한데, 시장도 회사도 그 시간을 항상 허락하진 않는다는 게 이 사고방식의 진짜 어려운 지점입니다.
#취미/글쓰기 #형식/클립 #사유하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