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보이기 시작한 것들
개발자로 진로를 전향하고 나서 스타팅 포인트에 서있을 때의 막연한 두려움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 요즘 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언제 가장 집중하게 되는지, 어떤 문제 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하게 되는지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요.
실시간 동시성을 고려한 / 대규모 트래픽을 다루거나 시스템 전체를 바라보며 설계하는 일, 복잡하게 얽힌 문제의 실마리를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들. 이런 순간들에서 느끼는 재미와 성취감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AI 시대, 개발자로서의 고민들
가끔 알고리즘 문제를 풀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AI가 나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코드를 작성하는데, 굳이 내가 복잡한 구현에 매달릴 필요가 있을까?
"AI가 점점 더 많은 것들을 대신하게 될 텐데,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들이 오히려 중요한 깨달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코드를 얼마나 빨리 짜느냐보다는,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정의하는 능력, 도메인을 깊이 이해하는 힘, 전체를 조망하며 설계하는 감각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온 것 같아요.
기술보다 어려웠던 것: 커뮤니케이션과 설득
처음에는 테스트 코드를 잘 작성하고, 새로운 기술들을 빠르게 익히면 좋은 개발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일을 해보니 그게 다가 아니더군요.
팀원들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나아가는 것, 내 생각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0년차 신입때는 특히 더) 최근까지도 뭔가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혼자 이것저것 만들어보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팀 전체의 맥락을 고려하지 못한 채 기술적 호기심만으로 접근했던 것 같습니다.
또 이게 좋은 의도였지만, 때로는 팀에 부담이 되기도 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얼마 전 아마존 SA 엔지니어분께 용기를 내서 커피챗 요청을 드렸었는데, 흔쾌히 수락해주셨습니다.
그때 나눈 이야기들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조직 내에서 각 팀이 사일로하게 고립되어 일할 때의 위험성과, 원활한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얘기였는데, 제가 겪었던 상황들과 너무 비슷했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이 오해를 받거나, 사일로한 팀분위기로 인해 팀워크가 흔들리는 경험을 하면서 많은 걸 스스로 부족한 점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확신 없음이 주는 안정감
예전의 저는 확신으로 가득했습니다. 이게 맞다, 저게 틀렸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일이 많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제가 아직 많은 걸 모르고 있다는 신호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알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는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불확실함이 불안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이런 상태가 더 건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느끼는 고민들, 때로는 혼란스러운 감정들도 성장 과정의 자연스러운 일부인 것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들
기초를 다시, 천천히
당분간은 운영체제, 네트워크, 데이터베이스 같은 기본기들을 다시 차근차근 공부해보려고 합니다. 요즘 Rust로 Redis를 직접 구현해보는 프로젝트([CodeCrafters])를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아마 아마 이런 기초 공부는 개발자로 일하는 내내 계속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디든 기초와 근본이 가장 핵심이구나를 느끼고있습니다.
지나온 길 돌아보기
예전에 실패했던 일들, 팀원들과 의견이 맞지 않았던 순간들을 차분히 정리해두고 싶습니다. 그때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더 나을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이런 복기가 앞으로 더 나은 팀워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사람들과 더 잘 소통하기
업무 보고서를 쓰거나, 코드 리뷰 댓글을 달거나, 피드백을 주고받을 때 더 배려 깊게 표현하는 방법들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코딩만큼이나 여러 모임에 나가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혼자 고민해서보다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 잘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며
경력이라는 건 단순히 년수가 아니라, “어떤 문제들을 마주하고, 어떻게 해결해왔는가”의 누적인 것 같습니다. 기술적인 기초는 튼튼한 체력을 만드는 일이고, 사람들과의 협력은 함께 나아갈 방향을 찾는 일입니다.
둘 다 중요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후자가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완벽한 선택이라는 건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제가 선택한 길에서 최선을 다하고, 계속 배워가며, 필요하면 언제든 방향을 바꿀 준비를 해두면 되는 것 아닐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저에게 필요한건 지금은 정답을 찾아야 하는 시기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바람이 세게 불수록 돛의 방향을 잘 잡고 항해해 나가면 됩니다.
기술도 잘하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는, “혼자만 잘하는 개발자”가 아닌 “함께 성장하는 팀의 일원”이 되고 싶습니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혹시 모를 당신에게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이 있을까요?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느끼고 있는 불확실함이나 답답함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지않을까요. 함께 고민하고 얘기를 나누고싶어요.
아직 많은 걸 모르고, 여전히 실수도 하고, 때로는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저를 더 겸손하게 만들고,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3년 전의 제가 지금의 저를 본다면 어떨까요? 아마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하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래도 많이 성장했구나”라고도 느낄 것 같아요.
개발자로서의 여정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닙니다. 함께 고민하고, 서로 도우며, 때로는 실패도 나누면서 함께 나아가는 길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더 많은 경험을 쌓은 후에 다시 이 글을 읽어보면, 또 다른 감정이 들겠죠.
그때까지, 지금 이 순간의 고민과 성장을 소중히 여기며 한 걸음씩 나아가보겠습니다.